일대일로: 물류 제국주의
일대일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프라다. 철도, 항구, 발전소, 산업단지, 고속도로 등 눈에 보이는 자산이 세계 곳곳에 들어서며, 중국식 개발 모델이 해외로 확장된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에 대규모 자금을 제공하고, 이 자금은 대부분 중국의 국영은행—중국개발은행, 수출입은행, 혹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을 통해 대출 형태로 전달된다. 이후 프로젝트는 중국 기업이 수주하고, 설계와 시공은 물론 자재와 장비, 노동력까지 중국에서 들여온다. 표면적으로는 '원스톱 서비스'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과 기술, 인력이 모두 중국 내부에서 순환되는 구조다.
함반토타항: 오해와 현실
널리 알려진 사례 중 하나는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이다. 2007년 착공된 이 항만은 중국 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건설됐고, 완공 이후에도 예상보다 훨씬 낮은 물동량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 스리랑카 정부는 이 항만의 70% 지분을 99년간 중국 국영기업(차이나 머천트 포트)에 임대했다.
그러나 이 거래의 세부사항은 널리 알려진 것보다 복잡하다. 많은 언론이 "부채 상환 불가로 항구를 넘겼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스리랑카 정부가 중국에 11억2천만 달러를 받고 항구 운영권을 임대한 것이다. 이 돈은 항구 건설 대출 상환이 아닌 외환보유고 확충에 사용됐으며, 항구 건설 관련 대출은 여전히 상환 중이다. 즉, 유동성 위기 해결을 위한 자산 임대의 성격이 강하다.
이 사건은 "부채 함정 외교(debt-trap diplomacy)"라는 개념을 촉발시켰고, 서방 언론과 싱크탱크는 이를 일대일로의 경고 사례로 자주 인용한다. 하지만 2024년 현재 함반토타항은 인도양 환적 허브로 성공적으로 변모하여 월 70만 대의 차량을 처리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케냐 몸바사-나이로비 고속철도의 운영 현실
케냐의 나이로비-몸바사 고속철도(SGR) 역시 중국 자금과 기술로 건설되었다. 2017년 완공된 이 472km 철도는 32억 달러(실제로는 36억 달러)의 비용이 투입됐으며, 케냐 독립 이후 최대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다. 중국수출입은행이 90%를 대출로 지원했고, 중국로교공사(CRBC)가 건설했다.
개통 초기에는 '아프리카의 현대적 철도'로 주목받았고, 승객 수송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17개월 만에 200만 명이 이용했고, 나이로비-몸바사 간 여행 시간을 8시간에서 4시간으로 단축했다. 하지만 화물 수송에서는 기대를 크게 밑돌았다.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첫해 98억 케냐실링(약 9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3년간 총 2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채 상환이다. 2023년 현재 케냐의 대중국 부채는 60억 달러에 달하며, SGR 관련 대출만 47억 달러가 넘는다. 2022년 케냐는 SGR 1단계 대출 상환을 연체해 1천80만 달러의 연체 이자를 물었다. 2023년 7월 한 달간 중국에 지불한 부채 상환액은 3억5천600만 달러로, 전체 부채 상환액의 80%를 차지했다.
나이바샤까지의 2단계 구간 완공 후 예정됐던 우간다 연결은 무산됐고, 철도는 나이바샤 인근의 두카 모자에서 멈춰 선 상태다. 당초 동아프리카를 관통하는 대륙 철도 구상은 현실적 제약에 부딪혔다.
라오스-중국 철도: GDP의 30%를 건 도박
라오스-중국 고속철도는 더욱 극단적인 사례다. 총 60억 달러(GDP의 약 30% 수준)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 개통되어 비엔티안과 중국 쿤밍을 연결한다. 중국수출입은행이 60%(36억 달러)를 대출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라오스-중국 합작회사가 부담하는 구조다.
라오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전체 대출의 3분의 1(약 10억 달러)만 책임진다고 되어 있지만, 합작회사가 상환 불능 시 실제로는 30억 달러 이상의 '숨겨진 부채'를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 계약 조건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책임 범위는 불분명하다.
현재 라오스의 공공부채는 GDP의 110-123%에 달하며, 대중국 부채가 전체 대외부채의 50%를 차지한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라오스 화폐 킵화는 달러 대비 절반으로 폭락했고, 이로 인해 외화표시 부채 부담이 급증했다. 라오스는 이미 2021년 송전망을 6억 달러에 중국 국영기업에 매각하는 등 부채-자산 교환을 실시했다.
성공 사례도 존재한다
모든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지부티 철도는 제한적이나마 상업운송에 성공했다. 34억 달러로 건설된 이 전기철도는 케냐 SGR보다 250km 더 길면서도 비용은 거의 비슷했다.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구는 '중-파 경제회랑'의 핵심 기지로 점차 안착하고 있으며, 세르비아의 벨그라드-부다페스트 철도는 유럽 내 중국의 전략적 진입로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라오스-중국 철도는 운영 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23년 310만 명의 승객을 수송했고, 관광객 증가로 라오스 관광업이 부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운영상 성과가 막대한 부채 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투명성의 부재와 구조적 문제
일대일로 인프라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투명성 부족이다. 대부분의 계약이 비공개로 이루어져 참여국 시민사회나 의회는 계약 내용을 알 수 없고, 부채 구조나 수익 배분 방식에 접근하지 못한다. 케냐의 경우 2022년에야 SGR 계약이 공개됐고, 라오스는 여전히 핵심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많은 프로젝트가 상업적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추진됐다. 함반토타항의 경우 2002년부터 스리랑카 정부가 계획했지만, 여러 타당성 조사에서 콜롬보항과의 경쟁 문제가 지적됐다. 라오스 철도 역시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에서 "상업적 논리가 약하다"고 평가받았다.
2020년 이후 중국 내부에서도 이런 한계를 인식한 기류가 보인다. 일부 국유기업은 해외 인프라 투자에 따른 손실과 현지 리스크를 우려하며 참여를 꺼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중국 정부 역시 "보다 지속 가능한 투자"와 "리스크 분산"을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일대일로가 초기의 공격적 확장 국면에서 조정 국면으로 이행 중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21세기 물류 제국주의
인프라는 권력의 물리적 표현이다. 철도와 항만이 어디로 향하고, 누가 건설하며,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고전적 제국이 국경을 넘어 군사를 보냈다면, 현대의 제국은 선로와 선박, 대출과 계약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