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 2/2> 불공정한 성공에 열광하는 이유

엘노스 2025. 6. 21. 05:58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와 복수라는 기본적인 서사를 넘어, 한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깊은 욕망과 판타지를 구현했다. 주인공 윤현우는 순양그룹 미래자산관리팀에서 13년간 오너 일가의 온갖 구린 일을 뒤처리하다가 살해당했으나, 이후 진도준이라는 재벌가 막내아들로 회귀한다. 문제는 그가 성공하기 위한 과정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1회부터 시청률 6%를 기록했으며, 최종화에서는 26.9%라는 높은 시청률을 달성했다. 

미래 지식이라는 특권

도준의 성공은 단순히 부유하거나 권력을 가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천재나 능력자가 아닌 '미래를 조금 아는'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기에 목표를 위해 단 하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그는 KAL 858 사건, IMF, 주식 열풍과 닷컴버블, 상암DMC 개발, 9.11테러까지 기억한다. 심지어 서태지의 은퇴와 복귀, 2002 월드컵 4강 진출, 장미란 역도선수의 올림픽 은메달도 안다.

과거의 억울함을 갚기 위한 복수극이지만, 이 복수는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도준은 회귀 전 윤현우로서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당시의 권력 구조를 교란시키고, 그 과정에서 가문을 부흥시킨다. 그러나 이 성공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도준이 기존의 재벌 시스템과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시스템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어떻게 그것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했는지이다.

하지만 이 성공이 진정한 '공정'의 실현일까? 도준의 성공은 그가 회귀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정보'라는 특권 덕분이다. 그의 회귀는 단순히 과거를 되돌리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능력이다. 즉, 그가 가진 능력은 ''미래'를 아는 특권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재벌상

도준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가 '새로운' 재벌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재벌로 성장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점에서 기존 재벌가의 무능함을 뛰어넘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정치적 거래와 법적 공백을 노리고, 기업의 주도권을 차지하며, 종국에는 자신의 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운다. 도준이라는 인물은 일종의 능력주의적인 이상을 대변한다.

드라마 기획 의도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극화가 날로 극심해지고, 출신 성분이 곧 계급이 되는 사회, 부모가 가장 큰 스펙이요, 재능인 세상. 태어나는 그 순간,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방에 결정 난다면... 고단한 인생,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도준은 능력으로 계급을 뛰어넘는 인물로 제시된다.

대리만족과 사회적 욕망

도준은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왜일까? 그 이유는 사람들의 내면 깊이 잠재해 있는 환생의 판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은 드라마의 주요 소구점 중 하나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이런 설정이 시작되고 드라마가 큰 환영을 받은 것은 비슷한 상상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내가 재벌집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하는 상상 같은 건데, 우리 사회에 물질적 결핍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을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도준은 이른바 '자기만의 경쟁력'을 갖춘 인물로 묘사된다. 그의 성공은 일종의 '능력주의'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는 단순히 가문이나 권력을 넘어서, 스스로의 능력과 전략을 통해 세상과 싸우고, 승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미지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을 반영한다. 그래서 도준이라는 캐릭터는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도덕적 모호함: 선악을 넘어선 실용주의

도준이 보여주는 인물상의 특이점은, 그가 결코 '악당'처럼 묘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때때로 무자비한 결단을 내리고, 냉혹한 선택을 하지만, 그 모든 결정이 결국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포장된다. 그가 일으킨 복수는 단지 개인적인 감정의 해소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구조의 변화를 이끄는 수단으로 그려진다. 원작에서도 주인공은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그 수단들이 얼마나 유효한지만을 평가한다. 즉 장르적으로는 판타지물이기도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피카레스크 소설이다.

그는 오히려 도덕적 규범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이고 능력 중심적인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로 자리잡는다. 그의 성공은 다소 비도덕적일 수 있지만, 그가 거두는 결과물은 결국 '한국 경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식으로 그려지며, 이러한 면에서 그는 '영웅'으로 묘사된다.

판타지에서 현실로의 회귀

흥미롭게도 드라마는 원작과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 마지막 화에서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결말을 내며 큰 구설에 올랐다. 드라마 스스로 여태의 전개를 부정하며 아예 회귀물이 아니라는 억지 뒷이야기를 붙여버렸는데, 이것은 15화까지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참하게 무너뜨린 격이었다. 재벌가에서 다시 태어난 진도준의 통쾌한 복수 판타지가 아니라 국밥집 아들 윤현우가 부딪쳐 극복해내야 하는 현실을 선택했다.

이러한 결말은 제작진의 의도된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판타지를 통한 대리만족보다는 현실에서의 정의 구현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복수를 이뤘다. 복수는 억울한 사람이 아니라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났다. 이는 결국 현실에서도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씁쓸한 진실을 드러낸다.

드라마의 흥행은 단순한 성공을 넘어서 원작 웹소설의 매출도 크게 증가시켰으며, 웹소설-웹툰-영상으로 이어지는 지식재산권 밸류체인의 강력한 시너지를 입증했다. 


결국 시청자들이 도준에게 열광한 이유는, 그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공정한 성공'의 환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성공이 미래 지식이라는 특권에 기반했을지라도, 그는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이는 능력주의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희망을, 그리고 개인의 노력으로도 기득권에 맞설 수 있다는 판타지를 제공했다. 이 지점에서 <재벌집 막내아들>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한국 사회의 깊은 욕망과 좌절을 반영하는 시대의 거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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