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상성과 환상 사이

엘노스 2025. 6. 21. 05:25

 

영화는 죽은 아내가 장마철에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설정은 장르적으로 보면 판타지지만, 영화는 일상의 감정에 집중한다. 세 인물—남편 타쿠미, 아내 미오, 아들 유우지—의 작은 일상과 정서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시간의 구조를 섬세하게 짠다. 

결정적인 반전(20살의 미오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서 미래로 타임슬립하여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는 설정)도 이야기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히려 감정의 고리를 완성한다. 타쿠미가 미오를 만나러 왔다가 포기하고 돌아갔던 날, 미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뒤쫓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연출 

도이 노부히로 감독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은 대사보다 시선과 공간에 담겨 있다. 비가 오는 장면에서 창밖을 보는 인물의 뒷모습, 어색한 웃음으로 식탁에 앉는 부자의 풍경, 그런 미세한 연출이 감정을 이끌어낸다. 특히 비라는 자연적 요소를 감정의 메타포로 쓰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비는 재회의 시간이고, 동시에 헤어짐의 예고이기도 하다.

다케우치 유코와 나카무라 시도는 과장되지 않은 연기로 관객을 설득한다. 특히 다케우치 유코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서서히 감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한 눈빛과 미소로 표현한다. 멜로드라마에서 자칫 감정 연기를 과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순간들도, 두 배우는 현실감 있게 잡아낸다. 

 

미장센 – 비와 녹색의 영화

이 영화는 시종일관 흐릿한 채도와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으로 촬영되었다. 배경은 도시보다는 숲과 언덕, 강가 같은 장소들이다. 이는 일종의 동화적 공간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영화의 톤은 부드럽고, 시각적 질감은 촉촉하다. 비 오는 날의 풍경과 우산 아래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은, 이야기의 정서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 영화의 정서는 사실 슬픔보다 평온에 가깝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기억을 정리하고, 다음 계절로 나아가는 태도. 다시 만났지만 결국 또 헤어져야 하는 시간 속에서 영화는 감정의 절정을 만들기보다는, 수용하고 감싸는 방식을 택한다. 관객에게도 감정을 휘두르지 않고, 조용히 머물다 가게 한다.

미오는 타쿠미를 만나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미 타쿠미, 유우지와의 미래를 겪은 미오는 설령 짧은 삶일지라도 사랑하는 그 둘과의 미래를 선택한다. 이런 운명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영화의 정서적 깊이를 만든다.

원작과 영향

이치카와 다쿠지의 판타지 연애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일본에서 48억 엔의 흥행수입을 기록하며 대히트했다. 2018년에는 이장훈 감독이 연출하고 소지섭과 손예진이 주연한 한국 리메이크가 제작되기도 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특별한 일을 아주 평범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설명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흘러가는 방식으로 여운을 남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