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1/2> 웹툰에서 드라마로

엘노스 2025. 6. 20. 07:08

 

이태원 클라쓰는 2020년 1월 31일부터 3월 21일까지 방영되어 16.5%라는 높은 시청률로 종영하며 JTBC 드라마 역대 3위를 기록했다.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는 청춘들'이라는 주제는 익숙했지만, 전개 방식과 캐릭터 설정이 기존 드라마 문법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웹툰 원작자인 조광진이 직접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웹툰의 구조와 인물을 적극적으로 번역하면서도, 그 감정과 서사를 대중적인 감각으로 재조립했다.

원작 웹툰은 '빠르게 넘어가는 이야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캐릭터들은 명확한 동기로 움직이고, 대사는 절제되어 있다. 대립 구조는 단순하지만, 내면 묘사는 길지 않다. 반면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충분히 감정을 얹을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어 웹툰에서 스크롤 한 번으로 넘어가버린 장면이 드라마에서는 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웹툰 속 박새로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만큼 설명적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박새로이의 침묵을 길게 잡고, 시청자는 그의 표정과 몸짓에서 정서를 유추해야 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서술 방식의 차이만은 아니다. 웹툰이 독자에게 '상상할 여백'을 남기는 방식이라면, 드라마는 그 여백을 감정으로 채운다. 특히 조이서와의 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원작에서는 다소 일방적으로 보였던 조이서의 감정이, 박새로이의 성장과 얽히면서 감정선의 중심 축을 형성한다.

캐릭터의 감정 확장

드라마의 가장 큰 변화는 인물들의 정서적 층위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장회장이다. 웹툰의 장회장은 목적이 분명하고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권력자다. 그러나 드라마 속 그는 더 고집스럽고 더 인간적이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냉소, 박새로이에 대한 적대감과 흥미 사이를 오가며, 단순한 악역을 넘어서서 시대적 '가부장'의 얼굴을 보여준다.

마현이 캐릭터는 웹툰에서도 MTF 트랜스젠더라는 설정이 명시되지만, 성별 정체성과 감정 서사가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반면 드라마는 마현이가 클럽에서 우연히 단밤포차 식구들을 만나며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박새로이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보이는 과정을 정면에서 그려낸다. 


드라마화의 전략: 폭력은 줄이고, 관계는 더하고

드라마화 과정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폭력성과 냉소의 조율이다. 원작에서는 박새로이가 장근원을 복수삼아 폭행하는 과정이 다르고, 장근원의 악행도 훨씬 거칠다. 반면 드라마는 이러한 장면을 상당히 완화하고, 복수의 감정을 구조화한다. 박새로이의 성장 과정은 감정의 통제를 통해 성숙해지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다시 구성된다.

또한 드라마는 인물 간 관계를 정제하고 정렬하는 방식을 택한다. 웹툰에서 가게 이름이 '꿀밤'이었으나 드라마에서 '단밤'으로 개명한 것은 작가인 조광진이 이태원에서 실제로 꿀밤이라는 포차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수아의 설정이 단독주택에 사는 설정에서 보육원에 사는 것으로 바뀌어 성공 지향적인 성격을 더 부각시키는 등, 웹툰에서 무심하게 지나갔던 장면들이 드라마에서는 감정선의 고리로 기능한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원작의 맛을 충실하게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원작의 이야기 골격을 충실히 따르되, 감정 중심의 구조로 번화를 주었다. 


이 변화가 작품의 깊이를 얕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이야기의 방향을 바꾼다. 드라마에서 박새로이는  '복수를 실행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감정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정을 감당한다는 건, 관계를 감당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감정의 구조가 이야기의 구조를 대체하면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첫 방송 5%에서 시작해 최종회 16.5%를 기록하며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상승했고, 일본에서는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리메이크작 '롯폰기 클라쓰'까지 제작되는 등 원작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에게 기억된다.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감정. 그게 이 드라마가 가진 감각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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