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발레 스쿨과 영국 엘리트 문화
로열 발레 스쿨은 종종 ‘예술계의 이튼 스쿨’이라 불린다. 이튼은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진학하는 대표적인 전통 명문 사립학교로, 권력과 특권의 상징이다. 로열 발레 스쿨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기능한다. 이곳은 단지 무용을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영국 문화 엘리트가 형성되는 구조의 일부다.
발레는 본래 귀족 예술이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정 무용에서 기원한 이 장르는, 유럽 왕실 문화와 결합하며 고상함과 질서, 절제를 상징하는 예술로 자리 잡았다. 영국의 로열 발레 역시 이 전통을 계승한다. 왕실 후원을 받는 예술단체, 정제된 몸짓과 음악의 결합, 그리고 특정한 훈육 방식은 모두 상류 문화의 코드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 로열 발레 스쿨은 이런 ‘왕실적 품격’을 재생산하는 교육 기관으로 기능해왔다.
이 엘리트 구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로열 발레 스쿨은 명목상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진입 장벽은 높은 편인다.
첫 번째는 경제적 장벽이다. 학교는 과정 유형에 따라 등록금이 다르다. 독립학교협의회(ISC) 공개 자료에 따르면, 기숙형(보딩) 과정은 연간 약 33,354파운드에서 38,172파운드, 주간형(데이) 과정은 연간 약 21,537파운드에서 28,299파운드에 이른다. 여기에 발레용품, 교복, 학년별 외부 활동비 등을 포함하면 연간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실제로 로열 발레 스쿨 공식 웹사이트는 중등 과정(Year 7~9) 기준 연간 학비를 약 28,297파운드로 제시하고 있다(Royal Ballet School, 2024/25–2025/26 기준). 학교 측은 90% 이상의 학생에게 정부 보조금이나 장학금을 통한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고 설명하지만, 이러한 제도 역시 신청 과정에 능숙하고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쉬운 중산층 이상 가정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두 번째는 문화 자본의 문제다. 로열 발레 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매우 어린 시기부터 전문적인 발레 수업을 받아야 하며, 오디션을 위한 훈련, 자기 표현력, 음악적 감수성 등이 요구된다. 이는 사설 발레 학원, 공연 경험, 예술적 노출 등 부모의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조건이다. 결국 ‘누가 자격을 갖추었는가’라는 질문은 곧 ‘누가 그런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로열 발레 스쿨의 학생 다수는 백인 중산층 이상의 가정 출신이며, 노동계급, 유색인종, 지방 거주 학생의 비율은 여전히 낮다. 발레는 오랫동안 백인-유럽계 신체적 이상을 기준 삼아왔고, 이는 단순한 미적 기준이 아니라 계급과 인종의 문화적 선호를 반영한다. 발레계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신체는 날씬한 체형, 긴 목과 다리, 작은 머리 등을 포함하며,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미스티 코플랜드나 프란시스카 하이와드 같은 몇몇 예외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소수자의 성공’으로 간주되며 오히려 구조적 불균형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학교 측도 이러한 구조를 인식하고 있다. 최근 로열 발레 스쿨은 매년 약 4,500명 이상의 어린 댄서들과 접촉하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역 오디션 확대, 장학 제도 강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이 발레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이러한 변화는 상징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실제 입학생 구성은 큰 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로열 발레 스쿨은 여전히 영국 엘리트 문화의 중심에 있으며, 발레라는 예술이 어떻게 특정한 사회 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