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의 패배, 감정의 승리: 2016년 브렉시트 캠페인

2016년 6월 23일, 영국 유권자의 51.9%가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단순한 정책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정체성과 경제 논리, 정치적 불신과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갈림길이었다. ‘Leave’와 ‘Remain’ 캠페인은 상반된 메시지 전략을 취했으며, 결과적으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선택이 됐다.
설계자 도미닉 커밍스와 슬로건의 힘
공식 탈퇴 캠페인 조직인 ‘Vote Leave’의 전략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인물은 도미닉 커밍스였다. 그는 유럽 문제를 추상적인 외교 정책이 아닌, 유권자 개인의 통제감 상실, 관료주의에 대한 불신, 지역 격차와 연결했다. 그 결과물이 “Take Back Control(통제권을 되찾자)”라는 슬로건이다. 이 구호는 주권, 국경, 세금 사용의 자율권 상실이라는 복합적 불만을 단 세 단어로 응축했다.
커밍스의 접근은 전통적인 캠페인 방식과 달랐다. 그는 데이터 분석과 디지털 타겟팅을 전략의 핵심에 두고, 페이스북과 구글 광고를 통해 세분화된 유권자 집단에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민, 국민보건서비스(NHS), 일자리, 공공 서비스 등 각기 다른 관심사를 가진 유권자에게 다른 메시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당시 영국 정치에서는 전례 없는 시도였다.
논란이 된 대표적 사례는 “We send the EU £350 million a week. Let’s fund our NHS instead(우리는 EU에 주당 3억5천만 파운드를 보내고 있다. 그 돈을 NHS에 쓰자)”는 문구였다. 이 숫자는 EU 분담금 총액에서 영국이 되돌려받는 리베이트 등을 제외하지 않은 수치로, 실제 순기여금은 주당 약 2억5천만 파운드 수준이었다. 영국 통계청(ONS)은 이 문구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이 메시지는 대중적 주목을 끌며 상징이 되었다.
존슨과 패라지의 역할 분담
보리스 존슨은 탈퇴 진영의 대표 정치인이었지만, 초기 입장은 명확하지 않았다. 2016년 2월까지도 그는 잔류 가능성을 열어뒀고, 실제로 두 가지 입장을 담은 칼럼 초안을 각각 작성하기도 했다. 탈퇴 지지는 정치적 기회 판단에 따른 선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보수당 내 유럽 회의론이 강했던 상황에서, 그는 탈퇴 캠페인을 통해 당내 입지를 넓히려 했다.
존슨은 언론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능했고, 때로는 사실과 다른 정보도 포함된 발언을 했다. 예컨대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7600만 명이 영국에 들어올 수 있다”는 주장은 실제 가입 절차의 복잡성과 반대 여론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낮았다. 하지만 간결하고 자극적인 메시지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반면, 영국독립당(UKIP)의 나이젤 패라지는 노골적인 반이민, 반엘리트 메시지를 내세웠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구호는 경제적 불만과 문화적 소외를 느끼던 백인 노동계층에 깊은 반향을 일으켰다. 패라지는 엘리트 정치권이 꺼리는 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정성 있는 ‘아웃사이더’로 비춰졌고, 이는 전통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에게 설득력을 제공했다.
잔류 진영의 전략적 한계
잔류 진영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주도한 ‘Britain Stronger In Europe’ 캠페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들은 경제적 불확실성과 손실을 강조하는 ‘공포 프로젝트(Project Fear)’ 전략을 채택했다. 재무부는 탈퇴 시 GDP 하락과 가계 소득 감소를 경고했고, IMF·OECD·영란은행 등도 유사한 전망을 내놓았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영국 방문 중 “EU를 떠난 영국은 무역협상에서 ‘줄의 끝(line at the back)’에 설 것”이라 발언하며 잔류를 촉구했다. 이는 일부 유권자에게 반감도 불러일으켰다. “미국이 영국 내정에 간섭한다”는 인식은 국민주권을 중시하는 여론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잔류 진영은 감정적 호소가 부족했다. EU가 가져온 긍정적 변화, 공동체적 비전, 다문화 사회의 가치 등에 대한 설득은 미미했다. 또한 메시지의 출처가 런던 금융가, 학계, 대기업에 편중되면서, 지방 유권자들과의 정서적 거리감이 더해졌다.
조 콕스 의원 피살과 '브레이킹 포인트'
투표 일주일 전인 2016년 6월 16일, 잔류 지지자였던 노동당 소속 조 콕스 하원의원이 극우 성향의 토마스 메어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공격 중 “브리튼 퍼스트” 등의 구호를 외쳤고, 조사 결과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나치 관련 서적과 기념품을 소유한 인물로 확인되었다.
같은 날 영국독립당은 “Breaking Point(한계점)”이라는 문구와 함께 난민 행렬을 촬영한 포스터를 공개했다. 이 포스터는 난민 위기를 EU 정책 실패로 연결시키며 반이민 정서를 자극했고, 나치 시대 선전물과 유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 고위 관료들조차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대중적 효과는 분명했다.
유권자의 선택과 사회적 단층선
투표 결과는 지역·세대·학력·계층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런던,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는 잔류가 우세했고, 잉글랜드 중북부와 농촌 지역은 탈퇴를 지지했다. 18~24세의 약 73%가 잔류를 지지한 반면, 65세 이상은 약 64%가 탈퇴에 찬성했다. 고학력일수록 잔류 지지가 높았고, 보수당 지지층은 탈퇴, 노동당 지지층은 잔류 성향이 강했다.
이 결과는 브렉시트가 단순한 대외정책 이슈가 아니라, 영국 사회 내부의 구조적 균열을 반영하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세계화 수혜자와 피해자, 다문화주의에 대한 수용과 저항, 세대 간 기대의 차이가 국민투표라는 장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브렉시트 캠페인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정 중심의 메시지, 디지털 기반의 정밀 타겟팅, 간결하고 강력한 슬로건이 사실 기반의 분석보다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이후 2016년 미국 대선과 유럽 각국의 포퓰리즘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도미닉 커밍스는 202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3억5천만 파운드 주장에 정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잔류파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인정했다. 이 발언은 ‘전략적 허위’가 어떻게 여론전에서 작동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단순히 ‘가짜뉴스’나 ‘대중의 착오’로만 치부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브렉시트는 무시당한 지역과 계층의 분노, 제도에 대한 불신, 정체성의 위기감이 폭발한 결과이기도 했다. 잔류 진영은 그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채 수치와 논리만을 앞세웠다.
결국 브렉시트는 현대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정보는 넘쳐났지만 신뢰는 부족했고, 진실은 존재했지만 믿음은 다른 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