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냐 고용이냐 – 연준의 '이중 목표'
연방준비제도는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만 집중하는 것과 달리, 연준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듀얼 맨데이트(dual mandate)'다. 1977년 의회가 연준법을 개정하여 "최대 고용, 물가 안정, 그리고 적정한 장기 금리를 효과적으로 촉진"하도록 명시한 이래로 지속되고 있는 이 이중 책무는 연준의 정책 결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동시에, 미국 경제정책의 특별한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낳은 정책 전환
듀얼 맨데이트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1977년 의회가 연준법을 개정한 것은 당시 미국이 겪고 있던 높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준이 1913년 처음 설립될 당시 의회가 부여한 임무는 단순히 "탄력적인 통화 공급, 상업어음 재할인 수단 제공, 그리고 미국의 보다 효과적인 은행 감독 체계 구축"이었다.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물가는 장기적으로 자동 조절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촉발된 물가 급등과 경제 침체가 겹치면서, 미국 정부는 단순한 물가 억제를 넘어 실업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연준에게 실업률 개선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되었고, 연준은 화폐 가치 안정이라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실물 경제의 활력을 동시에 책임지는 복합적 조정자로 변모하게 되었다.
상충하는 두 목표의 딜레마
하지만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은 본질적으로 상충할 수 있는 목표다. 이는 경제학의 필립스 곡선 이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이는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고용 창출을 위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면 과도한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되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연준은 매 회의마다 이 두 목표 사이의 최적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특히 두 지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 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의 정책은 듀얼 맨데이트 하에서도 때로는 한쪽 목표를 우선시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당시 14.8%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볼커는 연방기금금리를 1981년 6월 20%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미국 통화정책 사상 가장 강력한 긴축 조치 중 하나였다.
결과는 즉각적이고 가혹했다. 소비와 투자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었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처방'은 결국 성공을 거두었다. 인플레이션은 1983년까지 3% 이하로 떨어졌고,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금융위기 이후의 고용 우선주의
시대가 바뀌면서 연준의 정책 우선순위도 변화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전례 없는 완화적 정책을 펼쳤다. 제로금리 정책과 대규모 양적완화(QE)를 통해 고용 회복에 집중했고,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 압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입장을 취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연준은 2020년 8월 통화정책 프레임워크를 수정하여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AIT, Average Inflation Targeting)를 도입했다. 이는 과거 물가가 목표치(2%) 밑에 머물렀던 기간이 있다면, 향후 일정 기간 동안은 2%를 초과하는 인플레이션을 허용하겠다는 혁신적 접근 방식이었다. 이 변화는 고용 회복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구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인플레이션 재등장과 정책 전환
하지만 2021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팬데믹 이후 억눌린 수요의 폭발적 증가, 글로벌 공급망 병목 현상,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식품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은 재빠르게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공격적 금리 인상은 1980년대 이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에서 고용 지표는 상대적으로 견조함을 유지했는데, 연준은 인플레이션의 확산 속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연준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이중 목표를 조율할까? 핵심은 데이터 의존적 접근에 있다. 매월 발표되는 주요 경제 지표들이 연준의 정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가 관련 지표로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있다. 고용 관련 지표로는 실업률, 비농업 고용 증가수, 평균 시간당 임금 상승률 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또한 노동 참가율과 구인 배수(job openings-to-unemployment ratio) 같은 보조 지표들도 노동시장의 전반적 건강성을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하지만 이런 지표들은 모두 후행 지표라는 한계가 있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6개월에서 18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연준은 현재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 전망, 지정학적 리스크, 금융시장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시장과의 소통
연준 정책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시장과의 소통이다. 연준 의장의 발언 하나하나, 정책성명서의 미묘한 표현 변화까지도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를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라고 부르는데, 정책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특히 듀얼 맨데이트 하에서는 연준이 어떤 목표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시장의 이해가 중요하다. 제롬 파월 현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주 "우리는 데이터가 알려주는 바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는 두 목표 간의 복잡한 우선순위 판단이 숨어 있다.
연준의 물가 안정 목표도 시간에 따라 진화해왔다. 연준은 1996년 내부적으로 2% 인플레이션 목표에 합의했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2012년 1월에야 공식적으로 2% 목표를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2000년부터 금융위기 전까지 연준 내부에서는 1.5% 목표에 대한 합의가 있었으나, 2009년 금융위기 이후 2%로 상향 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2% 목표의 기원은 의외로 단순하다. 1988년 뉴질랜드 재무장관이 TV 인터뷰에서 즉석으로 "0~1% 정도"라고 답한 것을 중앙은행이 측정 오차 등을 감안해 2%로 설정한 것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정치적 압력과 독립성의 균형
듀얼 맨데이트는 연준을 단순한 기술관료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 균형을 고민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가 안정만을 추구하는 중앙은행과 달리, 연준은 실업의 사회적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은 주로 저소득층과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계층에게 특히 가혹하다. 연준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런 분배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물론 연준의 독립성도 중요한 가치다. 정치적 압력에 흔들리지 않는 통화정책이야말로 장기적 경제 안정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듀얼 맨데이트는 연준으로 하여금 경제적 형평성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현재 연준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인플레이션 기대의 안정적 관리와 노동시장 연착륙 사이의 균형이다. 2024년 들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비스업 인플레이션과 주거비 상승 등은 걱정거리로 남아 있다.
동시에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되면서 기업 투자 위축과 소비 둔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제압하기 전에 금리를 너무 일찍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될 위험이 있고, 너무 늦게 내리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자동화 같은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 기후 변화로 인한 경제적 충격, 지정학적 긴장 등은 기존의 정책 프레임워크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