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1/2> 고도 차이가 만든 계급

엘노스 2025. 6. 11. 08:11

 

《기생충》은 계급을 다루는 영화지만, '계급'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봉준호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위치'를 통해 계급을 시각화하고, 또 감각화한다. 

반지하라는 한국적 현실

영화는 처음부터 '아래'에서 시작한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방은 지면보다 낮은 곳에 있고, 창밖으론 겨우 사람 다리나 지나가는 개만 보인다. 시야도, 공기도, 햇볕도 절반쯤 차단된 공간에서 그들은 간신히 삶을 영위한다.

이 반지하는 한국만의 특수한 주거 형태다.  법적으론 '주택'이지만 실질적으론 지하실에 가깝다.  봉준호는 이 독특한 주거 형태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를 가시화한다. 


더 주목할 점은 반지하 특유의 '애매함'이다. 완전한 지하도, 완전한 지상도 아닌 이 공간은 기택 가족의 계급적 위치와 정확히 대응된다. 그들은 완전한 빈민도, 중산층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끊임없이 상승을 꿈꾸지만 현실은 하강의 연속이다.

강남과 강북의 수직 구조

반면 박사장 가족의 집은 언덕 위에 있다. 철저히 사적이고, 높은 담장이 쳐진 채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구조다. 이 집의 위치는 우연이 아니다. 서울의 부촌들—한남동, 성북동, 평창동—은 모두 언덕 위에 자리한다. 지형적 높이가 곧 사회적 위계를 상징하는 한국 도시 공간의 특징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서울의 도시 구조 자체가 계급을 공간화한다. 한강 이남의 강남은 '위'로 인식되고, 한강 이북의 강북은 상대적으로 '아래'로 여겨진다.  《기생충》의 두 가족이 각각 강북과 강남에 산다는 설정은 이런 서울의 계급 지형을 압축한다.

계단이라는 경계 장치

이 집에 처음 들어서는 장면에서 인물들은 '올라간다'. 계단과 오르막길을 따라,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동선이 아니다. 봉준호는 물리적 고도 차이를 통해 사회적 위계의 층위를 말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계단'의 반복이다.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박사장 집 마당에서 내부로 연결된 계단,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하실 계단까지. 이 계단들은 단지 위아래를 잇는 경로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경계이자 긴장의 축적 장치로 작용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계단의 '방향성'이다. 기택 가족은 항상 올라가려 애쓰지만, 결국 내려간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은 애초에 '위'에 있어서 오르내릴 필요가 없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계급 이동 가능성에 대한 냉소적 진단이기도 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과 달리, 실제론 계급 재생산이 더 강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수직 배치

흥미로운 건 이 위계 구조가 단지 외부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사장 집 내부에도 '위'와 '아래'가 있다. 손님을 맞는 1층, 가족의 일상을 위한 2층, 그리고 들키지 않아야 할 존재가 숨어 있는 지하실. 이 3중 구조는 곧 한국 사회의 은유이기도 하다.

지하실에 숨어 사는 근세라는 인물의 존재는 특히 의미심장하다. 그는 '더 아래'에 있는 존재로, 기택 가족보다도 더 철저히 은폐되어야 할 계급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비가시적 노동자들'—미등록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을 연상시킨다. 이들은 사회를 떠받치는 필수 노동을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들이다.

 '선을 넘지 않는' 거리감의 정치학

이 지리적 위계는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과도 맞닿아 있다. 박사장 부부는 기택 가족을 '고용'하지만, 그들과는 결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심지어 냄새나 말투, 존재 방식까지도 '선을 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이때 그 '선'은 단순한 사회적 매너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품격' 담론과 연결된다. 경제적 격차를 문화적·도덕적 차이로 포장하는 방식이다. '냄새'는 그 상징이다. 가난의 냄새, 지하의 냄새, 비좁은 공간의 냄새. 이는 단순한 후각적 현상이 아니라, 계급적 혐오의 구체적 표현이다. 박사장이 기택의 냄새를 언급할 때, 그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다.

영원히 내려가는 계단

결국 《기생충》은 공간을 통해 계급을 드러내는 영화다. 어디에 사는가, 어디서 밥을 먹는가, 어디로 퇴장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단지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봉준호는 그 구조를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눈으로 계단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이 계단은 어디로 향하는가? 영화의 마지막, 기우가 꿈꾸는 '계획'은 결국 상승에 대한 것이다.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 하지만 현실의 계단은 끝내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아버지는 지하실에 갇혀 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는 한국 사회의 '노오력' 신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계급 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과 달리, 구조적 불평등은 더욱 공고해진다. 《기생충》의 계단은 그래서 절망적이다. 오를수록 더 깊이 떨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