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3/3> 남산의 부장들이 말하지 않은 것들
<남산의 부장들>이 끝나는 순간, 이야기도 멈춘다. 총성이 울리고, 혼란의 기척이 휩쓸고 지나가면 화면은 어둡게 정리된다. 마치 역사가 그 순간에 완결된 것처럼. 하지만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가 더 거칠고 모호하며, 어떤 면에서는 더 절망적인 장이었다.
이 영화는 박정희의 종말을 마지막 장면으로 삼지만, 관객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그 이후를 묻게 된다. 그 총성은 진짜 전환점이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무대 교체에 불과했을까? 우민호 감독이 의도적으로 생략한 이 질문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정치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10·26 이후, 사라진 12·12
1979년 10월 26일 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궁정동 안가에서 사살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정교한 리듬과 감정의 밀도로 재현한다. 하지만 정작 이 사건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경로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김재규는 그 다음 날 계엄군에 체포되고, 유신 체제는 혼란 속에서도 곧바로 새로운 군부 질서로 재편된다.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서지만, 실질적 권력은 계엄사령부가 장악한다. 그리고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다.
박정희가 죽자, 유신은 무너졌지만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다. 대신 온 것은 또 다른 군부독재였다. 이는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이러니한 반전 중 하나였다.
의도된 공백, 정치적 침묵
이 중요한 연쇄는 영화에서 완전한 공백으로 남는다. 물론 모든 영화가 모든 역사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역사의 가장 중대한 변곡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그 결말이 남기는 공백은 단순한 서사의 미완성과는 다른 정치적 침묵으로 다가온다.
유신의 붕괴는 결과가 아니라, 잠시의 균열이었다. 그 균열은 곧 다시 봉합되었고, 그것은 또 다른 침묵의 시대를 불러왔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극, 이후 7년간 지속된 전두환 정권, 그리고 1987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진 진정한 민주화. 이 모든 것이 10·26의 총성과 직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만약 영화가 12·12까지 다뤘다면, 김재규의 총성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시민 없는 역사, 민중 없는 혁명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의 내부를 조명하는 데 탁월하지만, 그 권력이 사회에 남긴 흔적을 비추는 데는 조심스럽다. 시민은 이 이야기의 인물도, 증인도 아니다. 거리에 나선 학생도, 독재에 맞선 언론도, 공장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장르적 선택이 아니다. 정치 스릴러의 관습상 권력의 중심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1970년대 후반이라는 특정한 역사적 시점을 다룬다는 데 있다. 이 시기는 유신 체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이 본격화되던 때였다.
1978년 동국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 1979년 부마민주항쟁, YH 무역 사건과 김영삼 의원직 제명 파동. 이 모든 사건들이 10·26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부마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타를 가했고, 김재규의 마지막 결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모든 것을 프레임 바깥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이 배제는 단순한 연출상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어떤 역사 인식의 구조를 암시한다. 이 영화는 민중의 침묵당한 목소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침묵의 정치학: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정치성은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침묵은 단지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말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선택된 상태다. 공백은 단지 생략이 아니다. 강조하지 않기로 결정된 서사의 틈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둘을 동시에 선택한다. 총성 이후의 혼란, 권력의 재편, 법정에서의 김재규, 시민들의 분노와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12·12와 광주의 비극. 이 모든 것은 장면으로 구현되지 않고, 역사의 각주로만 남는다.
이러한 선택의 배후에는 특정한 역사 인식이 자리한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권력자들의 선택이고, 시민은 그 결과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인식. 중요한 변화는 위로부터 오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부차적이라는 인식. 이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엘리트주의적 역사관의 반영이다.
반복되는 패턴: 주체 없는 역사
이는 한국 현대사를 다룬 많은 작품에서 자주 반복된 패턴이기도 하다. 중요한 순간이 지나면, 그것을 말하는 주체가 사라진다. 모든 것이 권력자들의 선택과 오판, 회한과 결단으로 환원되고, 사회는 배경이 된다. 시민은 구경꾼이거나 피해자일 뿐, 주체가 되지 못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그 패턴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는 영화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의 한계를 반영한다.
닫힌 프레임, 열린 질문
<남산의 부장들>이 가지는 미덕은 분명하다. 닫힌 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설득력 있게 재현했고, 말과 시선, 공간과 동선으로 체제의 억압 구조를 형상화했다. 권력의 내적 모순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체제의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진정한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강렬한 클로징을 남기지만, 정치적으로는 열린 결말이 아니라 닫힌 프레임으로 끝난다.
이는 의도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영화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권력의 내부 역학에만 집중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맥락들이 사라졌다.
메워져야 할 공백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가 2019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과거사 영화가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재해석의 방식이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상력을 반영한다.
권력자 중심의 역사 서술, 시민 부재의 정치적 상상력, 그리고 변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기대. 이 모든 것이 《남산의 부장들》의 서사 구조 속에 스며들어 있다. 이는 이 영화가 단순히 1970년대를 다룬 시대극이 아니라, 2019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그리하여 이 영화가 남긴 것은 총성과 침묵 사이의 공백이다. 그리고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 공백을, 누가 메울 수 있는가?
답은 분명하다. 영화가 배제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던 학생들,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노동자들, 펜을 무기로 권력에 맞섰던 언론인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작은 저항을 이어갔던 평범한 시민들. 역사의 진정한 주체는 청와대나 남산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