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2/2> 끝나지 않은 이야기

엘노스 2025. 6. 8. 15:49

영화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이 성공으로 끝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전두광은 환하게 웃으며 국방부 계단을 내려오고, 정진은 체포된 채 헬기에 실린다.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어떤 응징도 없는 결말이다. 이 장면은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전두광은 전두환이다. 영화는 실명을 그대로 쓰면서도, 특정 장면에서는 그 인물의 '지금'을 묻는다. 예컨대, 병력을 자의적으로 동원한 그날 밤, 전두광은 웃으며 말한다. "내일 되면 다 끝난다고." 실제로 다음날 아침까지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에게 총을 들게 하고, 1981년 대통령이 됐다.

<서울의 봄>은 12·12의 성공이 훗날의 국가폭력과 독재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서사로 압축한다. 9시간 동안의 반란이 이후 10년간의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영화는 한 밤의 긴장감 속에 예고한다. 전두광의 승리는 단순한 권력 장악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장을 여는 신호탄이었다.

책임 없는 권력의 연속성

하지만 영화는 단지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전두환은 2021년 사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5·18 관련 법정에서는 "개가 짖는다"는 발언까지 했고, 법적으로는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끝내 사과도 진실 규명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책임의 연속성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출발한 권력 구조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제5공화국의 관료, 검찰, 군, 기업 인맥은 1990년대 민주화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2000년대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권과 재계에 잔존했다. 

군 인권 침해, 검찰의 과잉 권한, 국정원의 불법 사찰 문제 등은 모두 '12·12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권력기관의 정치화, 법치주의의 선별적 적용, 시민 감시 체계의 일상화 등은 전두환 체제가 만든 시스템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제도적 현실과 직결된다.

왜곡된 기억과 반복되는 변명

사회적 기억의 방식 역시 문제다. 2020년대 들어서도 5·18과 전두환 관련 이슈에 대해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거나, "경제는 살리지 않았냐"는 식의 발언이 공공연히 나오는 현실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여전히 전두환을 "정치는 잘한 사람"이라 평가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12·12의 책임 문제는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특히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 신화는 전두환 시대의 폭력성을 희석시키는 장치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희생과 민주주의 억압을 대가로 한 것이었고, 그 결과물조차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서울의 봄》은 이런 왜곡된 기억에 맞서,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단순한 감상이 아닌 실체를 동반한 기억을 되살린다.

법의 무력화와 쿠데타의 현재성

이 영화가 가장 섬뜩하게 보여주는 것은 법이 어떻게 무력화되는지의 과정이다. 정진은 계엄사령관이었지만 부하들의 병력 이동을 막지 못했고, 장태완은 밤새 통화를 하며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다가 결국 패배했다. 계엄령 아래에서도 명령 체계는 붕괴되고, 무력은 자의적으로 행사되었다.

이는 2017년 촛불 집회 당시 군 내부에서 '위수령 발동 검토' 문건이 발견되었던 사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또한 2022년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발언 논란, 각종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군과 경찰의 정치적 개입 의혹들은 쿠데타가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제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는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고, 그 과정은 《서울의 봄》이 보여준 것처럼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

미완의 청산과 반복되는 권위주의

영화는 또한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향수를 우려하게 만든다.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정서, 복잡한 민주적 절차를 우회하려는 욕망, '결단력 있는' 정치를 선호하는 성향 등은 12·12와 같은 사건이 재발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특히 경제 위기나 사회적 혼란 상황에서 나타나는 '강한 정부' 요구는 과거 군사정권의 논리와 닮아 있다. 전두환이 '안보'와 '경제'를 명분으로 권력을 정당화했듯이, 오늘날에도 비슷한 논리가 반복되고 있다. 《서울의 봄》은 이런 논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재진행형 질문: 우리는 과연 끝냈는가

결국 <서울의 봄>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진단이다. 전두광은 승리했고,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된 체제, 우리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법과 제도의 허점,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의 문제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12·12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했는가? 전두환식 권력 장악이 다시는 불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는가?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그날 밤의 교훈을 제대로 학습했는가?

<서울의 봄>이 2023년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무겁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 전두환은 죽었지만 전두환주의는 살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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