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몽동의 개체화론으로 읽는 공각기동대

엘노스 2025. 6. 7. 12:13

"개체화만이 존재한다. 개체가 아니라."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다. 보통 우리는 '나'라는 고정된 존재가 먼저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존재가 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몽동은 정반대로 말한다.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나'가 생긴다는 거다.

물방울처럼 만들어지는 '나'

컵에서 물을 떨어뜨릴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부터 '물방울'이라는 완성된 존재가 있는 게 아니다. 물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중력과 표면장력, 온도 같은 여러 조건이 만나면서 물방울이라는 형태가 생겨난다.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하고 관계 맺고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존재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동안 내가 걸어온 수많은 변화의 결과이다.

쿠사나기: 개체화를 보여주는 사례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령은 이런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인간의 몸이 아닌 전신 인공 신체를 가지고 있고, 기억은 디지털로 저장되며, 의식은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다.

쿠사나기는고정된 자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매 순간 새로운 정보와 경험, 연결 속에서 달라지는 존재다. 임무를 시작할 때의 쿠사나기와 끝마쳤을 때의 쿠사나기는 같은 몸을 가졌어도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이는 시몽동이 말하는 개체화의 핵심이다.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적 기억과 감정, 기계적 처리 능력, 네트워크적 연결성이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만나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도구와 인간이 함께 진화한다

쿠사나기의 의체(인공 신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녀의 감정, 사고, 판단에 직접 영향을 준다. 시몽동은 이런 관계를 '변환적 관계'라고 불렀다. 도구를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도구와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하는 관계다.

피아노 연주를 떠올려보자. 같은 곡이라도 피아노의 소리와 터치감에 따라 연주자는 다르게 반응하고 연주한다. 도구는 단순히 '쓰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사고를 만들어내는 파트너인 셈이다.

현재 우리가 스마트폰과 맺는 관계도 비슷하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스마트폰도 우리의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을 바꾼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진화한다.

기술도 진화하는 존재

시몽동은 인공지능이나 기계를 단순한 인공물로 보지 않았다. 기술도 발전하면서 자신만의 논리와 방향성을 갖는 존재로 진화한다고 봤다. 그래서 인간과 기술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공명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나아간다.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의체, AI, 전뇌화 기술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개체화를 보여준다. 특히 AI는 점점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하면서 인간과 대화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낸다.

현재 ChatGPT 같은 대화형 AI들도 이런 진화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인간과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하며,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집합적 존재

시몽동은 집합적 개체화'라는 개념도 제시한다. 오케스트라를 떠올려보자. 각 악기가 자기 소리를 내면서도, 함께 어울릴 때는 전혀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는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존재다.

<공각기동대>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이 연결되며 집합적 자아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더 큰 존재를 함께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온라인에서 협업하거나 소셜미디어로 연결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개인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 지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위험: 존재에 대한 통제

하지만 이런 연결은 새로운 문제도 가져온다. 정보가 연결되는 만큼 통제와 조작의 위험도 생기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기억을 조작하거나 감시하는 기술은 단순한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개체화 과정 자체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의 문제를 넘어서 '존재 자체에 대한 통제'라는 깊은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알고리즘 추천이나 필터 버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와 경험이 조작될 때, 우리의 개체화 과정도 영향을 받는 거다.

쿠사나기와 인형술사: 새로운 존재의 탄생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쿠사나기는 AI 존재인 '인형술사'와 융합한다. 인간과 정보가 만나 새로운 존재가 되는 이 장면은 전혀 새로운 개체화의 시작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서로를 흡수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사나기는 인형술사에게 인간적 경험의 구체성과 신체적 현실감을 제공하고, 인형술사는 쿠사나기에게 정보적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과 무한한 네트워크적 연결성을 열어준다.

서로를 변화시키면서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이 장면은 시몽동 철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개체화의 완벽한 상징이다. 과거의 나를 벗어나면서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나'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마무리하며

이 모든 이야기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AI의 급속한 발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의 진보, 생명공학의 발달은 <공각기동대>의 세계를 현실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프로젝트는 인간 뇌와 컴퓨터의 직접적 연결을 시도하고 있고, 생체의학 분야에서는 인공 장기와 로봇 의족이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은 인간의 신체적, 인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동시에 누가 이런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인간의 개체화를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개체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시몽동의 이 말은 우리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