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춤추는 정령들 - 레 실피드
쇼팽의 곡은 발레에도 쓰이는데, 대표적인 예가 '카멜리아의 레이디(Lady of the Camellias)'와 "레 실피드"다. "레 실피드(Les Sylphides)"는 마리 탈리오니가 초연했던 라 실피드(La sylphide)와는 다른 작품으로, 줄거리가 없고 순수하게 음악과 춤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낭만주의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흔히 라 실피드와 지젤을 들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낭만 발레의 정화(精華)는 레 실피드라고 생각한다. 발레 뤼스의 흥행사였던 디아길레프가 아꼈던 작품이기도 하다.
몽환적인 시작
쇼팽의 전주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무릎 밑으로 흘러내리는 순백의 의상, 곧 로맨틱 튀튀를 입은 정령들이 한 발을 뒤로 살짝 내밀고 두 손을 다소곳이 가슴 앞에 모으고 있는 몽환적인 장면으로부터 레 실피드는 시작된다. 이 작품은 어떤 스토리도 없이 순수하게 낭만적인 춤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방식의 안무는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작품의 탄생 과정
산파 역할을 했던 사람은 '발레 뤼스(ballet russe)'의 안무가였던 미하일 포킨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마리우스 프티파가 완성한 "대작 발레"의 시대였고, 포킨은 프티파의 고전 발레와는 달리 줄거리가 배제되고 춤과 음악으로 구성된 간결한 안무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던 와중에 글라주노프가 1892년에 편곡한 'chopiniana'라는 관현악 악보를 보게 된다. 이 악보에서 착상을 얻은 포킨은 글라주노프에게 왈츠 Op. 64-2도 추가해서 재편곡할 것을 의뢰했다. 발레 뤼스와 함께 파리로 올 때는 음악과 안무를 전면적으로 개정하고 이름도 <Chopiniana>에서 <Les sylphides>로 바꿨다.
1907년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글라주노프의 편곡을 바탕으로 한 "chopiniana"가 초연되었고, 1909년 6월 2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둔 작품은 'Les sylphides"였다.
음악 구성의 변화
<레 실피드>가 되면서는 글라주노프의 <쇼피니아나>의 곡들은 사라지고, 대신에 쇼팽의 다른 피아노곡들을 관현악으로 편곡해서 사용했다. 현재 표준 버전의 레 실피드에 포함되는 곡들은 다음과 같다:
- 폴로네즈 A장조 Op. 40 No. 1 (일부 단체는 전주곡 A장조 Op. 28 No. 7로 대체)
- 녹턴 Ab장조 Op. 32 No. 2
- 왈츠 Gb장조 Op. 70 No. 1
- 마주르카 D장조 Op. 33 No. 2
- 마주르카 C장조 Op. 67 No. 3
- 전주곡 A장조 Op. 28 No. 7
- 왈츠 C#단조 Op. 64 No. 2
- 화려한 대왈츠 Eb장조 Op. 18
작품의 흐름
발레의 서곡이 흘러나오고 막이 오르면 한적한 숲에 흰옷을 입은 공기의 정령들이 정지된 자세로 모여 있다. 녹턴이 시작되면 정령이 춤추기 시작하고, 이때 군무 뒤에 있던 수석무용수들이 합류한다.
여자 무용수가 왈츠에 맞춰 춤을 추고, 마주르카가 이어지면서 발레리나의 테크닉을 과시한다. 다음 마주르카는 남성 무용수를 위한 바리에이션이고, 또 다른 왈츠는 남녀 무용수를 위한 파드되로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대왈츠에 맞춰 전체적인 원무와 솔리스트들의 짧은 솔로가 이어지면서 막이 오를 때와 똑같이 정지된 정경으로 끝난다.
https://youtu.be/LBJNc3h7Hp8?si=zAxCLRovkBL7ZjW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