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에덴의 동쪽 - 에덴에서 추방당한 사람들

엘노스 2025. 5. 31. 09:32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은 단순한 가족사를 넘어, 선과 악, 자유의지, 인간 본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탐색하는 장대한 서사다.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밸리를 배경으로, 두 가문—트래스크와 해밀턴—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성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작품의 핵심은 아담 트래스크와 그의 쌍둥이 아들 칼, 아론의 이야기다. 겉으로는 선악의 구도를 따르는 듯하지만, 스타인벡은 이를 도식화하지 않고 인간 내면의 복합성과 윤리적 선택의 가능성에 집중한다. 칼은 자기 안의 어둠을 인식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반면 아론은 도덕적으로 이상화되지만 오히려 삶의 진실과 마주하지 못한다. 이처럼 형제의 대조는 인간 존재의 복잡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특히 이 소설의 철학적 핵심은 히브리어 단어 ‘티무셸(Timshel)’에 담겨 있다. “너는 죄를 이길 수 있다”는 이 문장은, 인간에게는 선과 악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스타인벡의 확신을 상징한다. 

스타인벡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매순간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 규정해나가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특히 케시 에임스라는 인물을 통해 스타인벡은 절대악의 존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변증법적 사고를 보여준다. 

등장인물 면에서도 이 작품은 다층적이다. 아담은 이상주의자이지만 현실 감각이 결여된 인물로, 미국적 이상주의의 실패를 체현한다. 그의 아내 캐시는 고전적 ‘악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냉소와 절망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극단적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칼은 아버지와 형의 그늘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성장하고, 그 갈등과 화해의 과정은 독자에게  큰 감정적 울림을 준다.

공간적 배경인 살리나스 밸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현대적 에덴동산’으로 기능한다. 이곳은 죄와 순수, 가능성과 실망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장소다. 자연은 풍요롭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상처받는다. 스타인벡은 이 배경을 통해, 인간의 삶이 에덴 밖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형식적으로는 작가의 서술 개입도 눈에 띈다. 스타인벡은 서사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직접 자신의 생각을 전하거나 인물의 내면을 해설한다. 이러한 개입은 때로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지만, <에덴의 동쪽>에서는 오히려 작가와 독자의 거리감을 좁히며, 서사에 철학적 깊이를 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물론 방대한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의 수는 독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고, 일부 여성 인물에 대한 묘사는 전형적이거나 고정된 역할에 머무르는 감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 작품은 자유의지에 대한 문학적 선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에덴의 동쪽』은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너는 이길 수 있다.” 스타인벡이 남긴 이 문장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