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87

오페라의 상업화와 오페라 부파의 탄생

오페라와 발레 모두 처음에는 왕족이나 귀족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궁정 예술의 일환이었다. 주로 결혼식이나 특별한 연회에서 상연되었고, 일반 대중의 접근은 어려웠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공연 예술을 상설 극장에서 유료로 상연한다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진다.1637년, 베네치아에서 세계 최초의 상업용 오페라 극장인 '산 카시아노(San Cassiano)' 극장이 문을 열면서 오페라는 궁정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오락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이 극장은 귀족의 후원 없이도 티켓 판매를 통해 운영되는 모델을 제시했고, 이후 다수의 극장들이 이를 따르게 되었다. 초기에는 여전히 귀족들이 극장 운영에 깊이 관여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흥행사들이 등장해 극장 경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오페라 2025.06.03

오페라의 기원과 변천: 피렌체에서 베네치아까지

오페라는 16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17세기 초 본격적인 예술 장르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렌체의 학술 모임인 ‘아카데미아’ 소속 ‘카메라타(Camerata,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라는 소모임에서 고전 그리스 비극을 당대에 재현해보자는 취지로 고전 문헌을 연구했고, 그 실험의 일환으로 초기 오페라가 탄생했다. 아카데미아는 15세기에 코시모 데 메디치가 설립한 학술 모임으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본떠 구성되었다. 코시모는 고대 철학에 심취한 인문주의자로,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예술과 학문을 적극 후원한 인물이었다.그의 후원을 받은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화가 프라 안젤리코, 조각가 기베르티와 도나텔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와 미켈로초가 있다. 특히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델 ..

오페라 2025.06.03

달빛 아래 춤추는 정령들: 레 실피드

쇼팽의 곡은 발레에도 쓰이는데, 대표적인 예가 '카멜리아의 레이디(Lady of the Camellias)'와 "레 실피드"다. "레 실피드(Les Sylphides)"는 마리 탈리오니가 초연했던 라 실피드(La sylphide)와는 다른 작품으로, 줄거리가 없고 순수하게 음악과 춤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낭만주의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흔히 라 실피드와 지젤을 들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낭만 발레의 정화(精華)는 레 실피드라고 생각한다. 발레 뤼스의 흥행사였던 디아길레프가 아꼈던 작품이기도 하다. 몽환적인 시작 쇼팽의 전주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무릎 밑으로 흘러내리는 순백의 의상, 곧 로맨틱 튀튀를 입은 정령들이 한 발을 뒤로 살짝 내밀고 두 손을 다소곳이 가슴 앞에 모으고 있는 몽환적인 장면으로부터 레..

발레 2025.06.03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신화, 음악, 그리고 전설의 지휘자

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첫 번째 발레 음악으로, 1910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안무는 미하일 포킨, 음악은 당시 28세였던 스트라빈스키가 맡았으며, 디아길레프가 조직한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파리 공연을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이 발레는 (Le Sacre du Printemps), (Petrushka)와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러시아 3부작’으로 불리며, 그의 이름을 유럽 전역에 알린 출세작이기도 하다. 의 성공 덕분에 그때까지 러시아 안팎에서만 알려졌던 스트라빈스키는 유럽 현대음악의 중심으로 빠르게 떠오르게 된다.민담에서 발레로 – 불새의 줄거리는 러시아 민담에서 유래한 이야기다. 마왕 카쉬체이(Kashei)의 정원에 황금빛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곳에 불새가 날아와 춤을 춘다...

발레 2025.06.03

파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발레의 진화

1832년 3월 12일, 파리 무대에는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이탈리아 출신 안무가 필리포 탈리오니가 안무한 가 초연되었고, 주역을 맡은 이는 딸 마리 탈리오니였다. 필리포 탈리오니는 딸에게 당시 발레학교의 관습과는 다른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 핵심에는 'Sur les Pointes', 즉 '푸앵트(pointe)' 기법이 있었다. 발끝을 세워 춤추는 이 까치발 기법은 마리 탈리오니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그녀를 통해 한층 세련되고 예술적인 표현 수단으로 발전했다고 평가받는다. 공기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날개 달린 의상을 입고 무대 위를 떠다니듯 춤추는 마리의 모습은 파리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필리포가 딸에게 강조한 것은 과시적인 스텝이 아닌 절제와 고상함이었고, 이러한 미학이 를 낭만 발레의 출발점으..

발레 2025.06.03

18세기 춤의 혁명과 발레 닥시옹

18세기 초 무렵 궁정 발레는 화려한 기교의 향연이었지만, 내면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무용수들은 저마다 기술을 뽐냈지만, 이야기는 공허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개념이 형성 중이었고 이를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한 인물이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가로 평가받는 장 조르주 노베르였다. 노베르가 주창한 이론은 '발레 닥시옹(줄거리가 있는 발레)'이었는데, 무용은 극적 줄거리를 가진 무대의 종합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념비적인 저서 『무용과 발레에 관한 서신(Lettre sur la danse et sur les ballets)』에서 발레 제작자는 음악가처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용수의 표정, 제스처, 연기 등이 춤 동작과 조화를 ..

발레 2025.06.03

루이 14세와 궁정 발레

17세기 베르사유 궁전에서 펼쳐졌던 화려한 발레 무대. 그 이면에는 단순한 예술적 향유를 넘어선,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바로크 시대, 새로운 예술 언어의 등장 바로크(baroque)라는 말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나왔다.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던 르네상스와 달리, 바로크는 더욱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추구했다. 1600년부터 1750년경까지의 이 시기는 절대주의 왕정과 중상주의가 확립되던 때였고, 교회와 궁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술 문화가 꽃피었다. 작곡가들은 '이전과는 다른 예술'을 만들고 있다는 자각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의식은 발레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여섯 살 왕의 권력 콤플렉스 루이 14세는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청소년기에 겪은 '프..

발레 2025.06.03

안무의 모차르트와 수잔 패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수잔 패럴의 춤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정말 인간일까?'그녀의 몸은 마치 정교하게 조율된 바이올린처럼, 음악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놓치지 않고 움직임으로 번역해낸다. 천재 안무가가 만난 완벽한 뮤즈 수잔 패럴은 20세기 발레계의 전설, '안무의 모차르트' 조지 발란신이 말년에 만난 최고의 파트너였다. 발란신과 함께 작업한 수많은 발레리나들 중에서도 그녀는 독보적이었다. 발란신은 백조의 호수나 지젤처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대신, 오직 '춤 그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음악이었고, 그 음악을 어떻게 몸의 언어로 번역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음악을 춤으로 번역하는 마법사 "성공적인 안무를 만들..

발레 2025.06.03

엘레나 베레즈나야&안톤 시카룰리제

피겨에서 가장 위험한 종목이 페어 스케이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쓰로우 점프와 리프트가 갈수록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지금은 더 그렇죠. 부상의 위험이 높은 탓에 훈련 환경도 까다롭고 전문적인 코치에게서 배워야 하기 때문인지 세계적으로 선수층이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만큼 파트너 간의 신뢰가 중요한 종목인데, 상호 신뢰관계가 깨졌을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 94 릴레함메르 올림픽에서 8위를 했던 엘레나 베레즈나야&올렉 슐리아코프 조였습니다. 4살 때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한 엘레나 베레즈나야는 코치의 권유에 따라 13살 때 페어로 전향했는데 구소련 페어 왕국의 산실이었던 체스카 모스크바 클럽에서 한동안 훈련하다가 파트너인 올렉 슐리아코프를 따라서..

피겨 2025.06.02

은반 위의 배우: 카타리나 비트

카타리나 비트는 아마 여자 싱글 역사상 최초로 은반 위의 배우라고 부를 수 있는 스케이터였습니다 브룩 쉴즈를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만큼 빼어난 외모와 압도적인 존재감, 카리스마를 두루 갖추었죠. 85/86시즌부터 캐릭터 표현과 스토리텔링에 중점을 두었는데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카르멘입니다. 비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아이스댄스에서는 토빌&딘이 사라예보에서 심판 전원에게 예술점수 만점을 받은 연기로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종목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후로 퍼포먼스 지향의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있었고, 이처럼 아댄에서 영감을 받았죠. 토빌&딘은 81년 세계선수권에서 챔피언이 된 이후로 매년 새로운 컨셉을 구상했고 주제가 정해지면 적절하게 형상화하기 위해서 음악과 무성 영화, 소설, 뮤지컬처..

피겨 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