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푸틴 이후는 있는가: 권력 승계와 체제의 지속성

엘노스 2025. 7. 14. 16:50

 

푸틴은 2024년 3월 대선에서 87.28%의 득표율로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2020년 헌법 개정으로 과거 임기를 초기화하면서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 지나치게 한 인물에게 집중된 구조에서는 후계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제정 시기와 소비에트 체제를 거치며 승계 설계에 반복적으로 실패해왔고, 푸틴 이후 역시 이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러시아의 권력 구조는 제도보다 인맥과 비공식 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인다. 공식적으로는 대통령, 총리, 의회가 존재하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푸틴과 그를 중심으로 형성된 실로비키—국가 안보, 군, 정보기관 출신 인사들—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이들은 충성도와 경력적 연계성에 따라 중용되며, 대표적으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FSB 국장이 있다.


이 네트워크는 수직적 구조를 띠고 있어 내부 이견이나 갈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푸틴의 직접 개입 없이는 주요 인사 결정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후계 구도 형성이 어렵고, 결국 후계자는 지명과 보호라는 전제 아래서만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푸틴은 지금까지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암시한 적이 없다.


한때 후계자로 거론되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2008~2012년 대통령직을 맡은 뒤 총리로 물러났고, 이후 정치적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되었다. 현재는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지만, 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권력 기반은 크지 않다.
체제 외부의 대항세력도 제거되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4년 2월 16일 수감 중 사망했다. 그는 전국 단위에서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사망은 러시아 체제가 정치적 경쟁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엘리트 내부에서도 권력 승계의 윤곽은 불투명하다. 바그너 그룹을 이끌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2023년 6월 반란 시도를 통해 일시적으로 독립된 군사 세력으로 부상했지만, 같은 해 8월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푸틴이 권력의 분산이나 위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장기 집권이 낳는 또 다른 문제는 권력망 내 이해관계의 고착이다. 재계, 안보기관, 사법 시스템, 국영 언론 등이 푸틴의 권위를 중심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은 예산 배분, 기업 경영, 사면권 등 주요 권한에서 대통령의 판단에 의존한다. 푸틴이 물러날 경우 이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불투명하다.


사회적 기반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공표된 여론조사에서는 여전히 푸틴 지지율이 높지만, 응답 환경과 미디어 통제가 작용하는 상황에서는 해석에 신중함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치적 무관심이나 회피로 반응하고 있으며, 20~30대 남성 다수가 징집 회피나 생계 문제 등으로 국외로 이탈한 것은 여러 통계로도 확인된다. 이들은 적극적 저항보다는 국가에 대한 기대를 철회하는 방식으로 체제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지방 권력 역시 중앙 지명에 따라 형성되지만, 실제 운영은 각 지역의 자율적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팬데믹 초기 대응 과정에서도 나타났듯, 중앙정부가 전략만 제시하면 실행은 지방 정부의 책임으로 넘어간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유연성을 확보하지만, 중앙 통제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내포한다. 권력 공백이 생길 경우 지방 권력이 독자적 정치 입장을 형성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 체제는 실질적 경쟁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선거와 법 개정, 제도 운영을 반복하면서 체제의 '정상성'을 연출하고 있다. 정치라기보다는 일종의 관리 체제에 가깝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푸틴 이후의 시나리오는 지금껏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


2020년 개헌으로 인해 푸틴은 2030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게 되었고, 이 경우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그때까지 재임한다면 총 32년간 권좌에 있게 되어, 소련 시절 스탈린의 당 서기장 재임 기간(31년)을 형식적으로 넘어서는 기록이 된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와 달리 현재는 대통령제가 적용되고 있는 만큼, 단순 비교에는 제도적 차이도 고려되어야 한다.
푸틴 이후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체제 전반이 한 인물의 존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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